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왓챠 영화 더 파더 치매를 겪는 아버지의 시점

by 리사럽45 2025. 5. 20.

영화 더 파더

 

혼란과 단절 속 현실이 무너지는 감각

영화 ‘더 파더(The Father)’는 치매라는 질병을 단순한 소재가 아닌, 한 인간의 인지적 혼란과 정체성의 붕괴를 내면에서 직조해 낸 탁월한 심리극으로 완성한 작품입니다. 주인공 앤서니는 점차 기억을 잃고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인식하지 못하게 되며, 관객은 그의 시점을 따라가며 혼돈에 빠진 세계를 체험하게 됩니다. 특히 영화는 주관적 시점이라는 독특한 연출을 통해, 시간과 공간의 흐름이 뒤엉킨 치매 환자의 현실을 그대로 스크린에 구현합니다. 같은 인물임에도 배우가 바뀌고, 익숙하던 공간의 구조가 미묘하게 바뀌는 설정은 앤서니가 느끼는 불안감과 혼란을 관객이 직접 느끼도록 만들며, 이로 인해 단순한 동정이나 연민 이상의 감정적 몰입을 유도합니다. 그는 딸 앤을 기억하지 못하거나 다른 사람으로 인식하고, 익숙하던 자신의 집이 요양 시설로 변해 있는 등 상황과 인물이 매 순간 달라지는 세계에서 점점 자신이 누구인지조차 확신하지 못하는 단계에 도달하게 됩니다. 이러한 변화는 감정의 기복과 더불어 정체성의 해체를 보여주며, 영화는 그가 느끼는 공포, 외로움, 저항감, 슬픔을 다층적으로 엮어냅니다. 치매라는 병은 단순히 기억의 상실이 아닌, 현실과 인간관계의 기반이 붕괴되는 고통이라는 점을 영화는 매우 섬세하고 직관적으로 전달하며, 앤서니의 혼란은 곧 관객의 혼란이 되고, 그의 두려움은 우리 모두의 근본적 공포로 이어지게 만듭니다.

부조리한 세계 속에서도 인간적 존엄을 지키는 투쟁

앤서니는 영화 내내 점점 퇴행하고 약해져 가지만, 동시에 그는 자신의 존엄과 자율성을 지키기 위해 치열하게 저항합니다. 그는 자신의 상태를 받아들이기를 거부하며, 타인의 도움을 ‘간섭’으로 인식하고, 자신이 여전히 스스로의 삶을 통제할 수 있다는 착각 속에 머무르려 합니다. 이러한 태도는 그의 고집이나 공격성으로 비춰질 수 있지만, 사실상 그것은 자기 존재를 지키기 위한 마지막 본능적 몸부림입니다. 딸 앤이 요양 시설에 입소시키려는 상황에서도 그는 극심한 저항을 보이며, 끊임없이 자신이 ‘혼자서도 잘 살 수 있다’는 환상을 유지하려 하지만, 그조차도 점차 무너지고 있다는 사실을 직면하게 됩니다. 영화는 그가 느끼는 현실과 타인이 보는 현실이 끊임없이 충돌하는 과정을 보여주며, 이 속에서 그는 점차 외부 세계에 적응하는 것이 아니라, 내부 세계에 스스로 갇혀가는 모습으로 전락합니다. 하지만 앤서니의 이기적이고 때로는 거친 행동조차도, 인간이 존엄을 잃지 않기 위해 얼마나 처절하게 저항하는지를 보여주는 장치로 기능합니다. 결국 그는 타인의 얼굴을 기억하지 못하고, 시간의 흐름을 인식하지 못하는 무력한 존재로 남게 되지만, 그럼에도 영화는 그를 단지 불쌍한 치매 환자로 소비하지 않고, 마지막 순간까지도 ‘자기 존재’를 갈구하고 감정의 깊이를 유지하는 한 인간으로 조명합니다. 이는 ‘노년’과 ‘질병’이라는 주제를 다룸에 있어 전형적인 비극 서사가 아닌, 인간 내면의 가치와 그 복잡성을 직시하는 시도로서, 관객으로 하여금 쉽게 동정하거나 안타까워하기보다, 앤서니라는 인물 안에 내재한 인간적 고뇌와 불안을 마주하게 합니다.

연출과 연기로 완성된 몰입형 감정 체험

‘더 파더’의 가장 큰 특징이자 강점은 플로리안 젤러 감독의 연출과 앤서니 홉킨스의 압도적인 연기를 통해 치매라는 주제를 감상이나 설명이 아닌 체험의 방식으로 전달한다는 점입니다. 영화는 전통적인 서사구조를 거부하고, 관객이 주인공의 정신 상태를 따라가도록 시공간을 비선형적으로 재구성하며, 이로 인해 관객은 앤서니와 함께 ‘혼란스러운 세계’를 직접 경험하게 됩니다. 시간 순서가 엉키고, 사건이 반복되며, 대사와 인물도 바뀌는 이 구조는 관객에게 불쾌하면서도 몰입적인 감각을 제공하며, 치매 환자가 느끼는 세계의 단절과 붕괴를 누구보다 정확하게 전달합니다. 특히 앤서니 홉킨스는 극도의 감정 변화와 불안, 두려움, 분노, 애정을 모두 담아내는 명연기로 평생을 연기해 온 그의 커리어에서 정점을 찍는 듯한 인상을 남깁니다. 그의 표정 하나, 시선의 떨림, 목소리의 억제된 떨림은 단어보다 훨씬 많은 이야기를 전하며, 관객으로 하여금 스크린 너머로 그 감정을 고스란히 받아들이게 합니다. 마지막 장면에서 앤서니가 유아처럼 “나는 내 엄마가 보고 싶어요”라고 흐느끼는 장면은 인간이 감각과 기억, 관계마저 모두 잃었을 때 가장 깊숙한 감정의 뿌리가 어디에 있는지를 보여주며, 깊은 울림과 눈물을 자아냅니다. ‘더 파더’는 치매라는 질병을 묘사하는 동시에, 기억과 감정이 얼마나 인간의 정체성과 직결되어 있는지를 철저히 해부하고, 이를 관객이 함께 느끼고 공감하게 만드는 강렬한 영화적 체험을 선사합니다. 결국 이 영화는 노년과 병, 상실의 문제를 넘어, 인간이 자기 자신을 지켜내고자 하는 간절한 몸짓을 가장 아름답고도 절망적인 방식으로 담아낸 수작으로, 오랜 여운과 통찰을 남깁니다.